<마이네임> 해석
최무진은 늘 배신당하는 쪽이었다. 그래서 배신자들의 심리가
궁금했다. 그의 수하들은 그를 괴물이라 불렀다. 본인도 스스로를
괴물이라 여겼다. 괴물답게 배신자들을 모조리 처단해왔다. 그게
당연했으니까.
그러나 윤동훈 때는 달랐다. 그동안 자신을 배신한 수많은
사람들을 아무리 죽이고 고문하고 상처 주고 난도질할 땐 아무렇지 않았던 마음이 윤동훈이 죽자 흔들렸다. 각별히
믿고 사랑한 형이었다. 그런 형을 죽이자 흔들렸다. 항상
하던 대로 죽였을 뿐인데. 그의 마지막 순간을 느껴보고 싶었다. 자신도
배신하는 쪽이 되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배신감에 눈멀어 죽일 듯이 달려드는, 본인의 모습을 목도하며 그들의 죽음을 느껴보고 싶었다. 특히 윤동훈, 그를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작정하고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윤지우에게 접근하였다. 처음부터 그녀를 속였다. 윤동훈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그렇게 하면서 윤동훈을 추억했다. 끊임없이 그를 그리며 원대하고 치밀한 계획을 시작했다. 윤지우가
최무진 자신처럼 되도록 키웠다. 괴물처럼 강하고 잔인한 살인자가 될 수 있도록.
모든
게 계획대로 잘 되어갔고, 결국 윤지우는 자신이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최무진을 죽이려 한다. 근데 방해물이 나타났다. 전필도.
그래서 전필도를 죽여버렸다. 안 그러면 7년간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거니까. 나에게 와라, 윤지우.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처절하게 괴물이 되어라. 그 결과 윤지우는
최무진의 곁으로 돌아가는데.
둘의 최종 결투가 시작된다. 최무진의 마음은 들떠 있다. 윤지우 너는 동훈이보다 나를 닮았다며, 나같은 괴물이 되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윤지우는 너무 약했다. 최무진은 여유롭게 모든
공격을 막아내며 월등한 실력을 뽐낸다. 지우는 무자비하게 짓밟힌다. 최무진은
실망한다. 이것밖에 못하냐며 다그친다.
그러나 결국 최무진이 패배한다. 결정적인 순간 지우의
총에는 총알이 없었고, 최무진은 그녀의 텅 빈 총을 허공에 쏘아대며 지우의 칼끝에 생을 마감한다. 이때 최무진의 얼굴은 처음으로 당혹감에 휩싸이게 된다. 첫째, 순간의 마지막 실수로 인해 결국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 이번에도
어김없이 최무진이 배신당했다. 지우에게 속았다. 총은 비어
있었다. 이쯤 되면 최무진의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둘째, 최무진은 괴물이 아니었다. 그저 괴물이 되고 싶은, 미완성의 괴물이었다. 결투의 순간, 진정한 괴물은 윤지우였다. 최무진은 윤동훈을 죽인 기억에 평소 불면증에 시달리고, 도강재의
죽음으로는 악몽을 꾼다. 그러나 윤지우는, 적어도 최무진의
죽음이 악몽으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만큼은 완전한 괴물이었기에 후회도 눈물도 없다. 결국 윤지우는 그 누구도 닮지 않았다. 최무진을 능가했다. 최무진의 전략이 필요 이상으로 잘 통한 것이다.
윤지우가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실제 주인공은 최무진이다. 최무진이 주인공이어야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다. 절대 악의 인물이
주인공이고, 그가 권선징악을 맞이하며 극은 끝난다. 이때의
권선징악은 겉보기와는 다른 부류의 권선징악이다. 얼핏 보면 최무진의 죽음이 권선징악이라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죽는 순간까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것, 이것이 최무진의
권선징악이다. 배신자가 되어 죽는 낭만을 원했으나 결국 어김없이 배신당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원하던 죽음을 맞이하지 못한 것이 바로 최무진의 몰락이다.
처음에는 최무진이 주인공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극을 한 번, 두 번 점점 볼수록 최무진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그때가 시작이다. <마이네임>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시작. 시작이 반인지라 최무진의 매력을 발견한 순간 그 다음은 시간 문제다. 주인공을 최무진으로 설정했을 때 퍼즐이 빈틈없이 완성된다. 모든
순간, 모든 대사, 심지어 모든 허점까지 완벽해진다.
최무진은 주인공이다. 동시에 그는 빌런이다. 이것은 전무후무하다. 정말 치밀한 작품이었다. 주인공이 권선징악을 맞이하다니. 이 자체로도 신선한데, 그 권선징악은 꽁꽁 숨겨져 있어 눈치채기 어렵다. 최무진은 권선징악이었으나
한편으로는 그가 불쌍하다. 매력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악한 자여도 매력적이면 안타까울 수도 있나 보다. 어쩔 땐 윤지우가, 또는 차기호가 빌런으로 느껴지기도 하니까. 이런 면에서 <마이네임>은 내가 유레카를 외친 첫 작품이자 아마도 마지막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이만한 작품이 또 나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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