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 17회: 이미현의 각성



  청소부와의 결투에서는 절제된 깔끔함이 돋보였다. 오랫동안 몸에 품어만 왔던 동작들. 드디어 선보인 동작들은 확실했다. 몸에 배어 있었고, 완벽했다.

  그리고 대망의 각성씬. 미현은 숨을 깊게 몰아쉬다가 한마디에 굳어버린다. "김두식". 이 모든 게 그이 때문이라고. 

  미현은 바닥에 웅크려 있다. 분명 총을 쐈을 땐 멀쩡히 서서 멋지게 발포했는데 다음 장면에선 어두운 바닥에 웅크린 채 숨을 고르고 있다. 생각해보니 그녀의 첫 살상이다. 미현은 여러 감정이 교차했을 것이다. 살상자인 블랙이 되고자 할 때 치열하게 훈련받았으나, 정작 임무에 투입됐을 땐 살상하지 못해 실패자가 되었다. 그랬던 그녀가 세월이 지나고 비로소 오늘, 첫 살상을 했다. 어떤 기분이었을까. 미현에게는 다소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서 청소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녀가 진짜로 죽었음을 확인했을 것이다. 사실을 확인한 후, 미현은 그 청소부를 출입구 쪽 벽에 기대어 옮겨놓는다. 이는 청소부가 총을 맞은 위치와 시체가 놓인 위치가 다르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미현은 청소부를 앉혀놓고 나서 쭈그린 채 숨을 거칠게 몰아쉰다. 방금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렇게 호흡을 가다듬는데 그의 이름이 들린다. 김두식. 블랙 커피를 좋아하는, 왕돈까스를 좋아하는, 아재 개그를 좋아하는, 그리고 눈 내리는 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을 좋아하는 그. 그녀의 기쁨이자 슬픔인 그. 바로 그의 이름이 북한 기력자의 입에서 나왔다. 그 순간 미현은 무엇을 느꼈을까. 어쩌면 희망이지 않을까. 생사도 모르는 행방불명된 남편의 소식. 김두식의 이름을 듣고 미현은 용기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게 아직 끝나지 않았을테니. 아니, 실은 시작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으니.

  그래서 그녀는 웅크리고 있다가 서서히 일어선다. 설상가상으로 봉석이가 전화를 받지 않지만 그래도 그녀는 일어선다. 결연한 눈빛으로. 그리고 천천히 문 밖으로 걸어나온다. 문을 살포시 닫고선 발걸음을 옮긴다. 밖은 눈이 내리고 있다. 그녀에게는 익숙하다, 눈 내리는 밤하늘이. 포근하다. 발걸음을 옮기기 직전, 힐끗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마치 아직도 남아있는 습관처럼. 이윽고 걸음을 옮긴다. 총을 장전하는 그녀의 표정은 비장하다. 그러고선 안경을 벗는다. 이젠 필요가 없다. 더이상 숨지 않기로 결심했으니까.

  앞으로 어떤 운명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미현은 마지막 진실을 향해 한발짝씩 내딛는다. 김두식에 의해 그녀는 다시 한 번 각성한다.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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